토머스 쿤은 하버드 물리학과 수석 졸업생이다.
그러나 그의 <과학 혁명의 구조>가 주목 받은 곳은 비과학 분야였다.
과학계가 그 책을 맹렬하게 비판한 이유는 과학이 이룬 역사적 성과에 대한 토머스 쿤의 발칙한 통찰 때문이다.
“쿤 이전 지식인들의 사고는 철저히 귀납적 가치에 함몰되어있었다. 기존의 성과에 새로운 성과들이 누적되어 결과가 나오는 것이 곧 지식의 세계였다. 쿤은 누적가치가 신봉되는 시기를 ‘정상과학의 시기’라고 명명했다.” (허연,고전 탐닉,p152-153)
토머스가 제시한 개념, ‘패러다임’은 이 누적된 지식이 만들어낸 인식의 틀, 사고의 틀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철저히 귀속되어있으면 과학자는 어떤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지 못한다. 어떤 패러다임을 믿고 있느냐에 따라 동일한 현상을 관찰하더라도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그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이전에 겪은 시각적, 개념적 경험이 그에게 보도록 가르친 것에도 의존한다.”라는 그의 말은 ‘인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낳았다. 그 덕분에 근래에 사전적으로 정의되는 패러다임의 뜻은 다음과 같다.
“한 시대의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 (Oxford Languages)
그는 코페르니쿠스, 뉴턴, 라부아지에, 다윈, 아인슈타인 등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온 과학자를 정치혁명가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자들이 죽고 새로운 진리를 신봉하는 세대가 주류가 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한가지의 통찰과 세가지의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첫째, 고전이 가진, 과거의 유물이 지닌 가치에 대한 통찰이다.
제인에어와 오만과 편견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흔한 로맨스 소설이다. 옛 시대상이 흥미롭고, 그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가진 패러다임; 남녀평등, 진취적인 여성, 여성의 사회 활동이 샬롯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이 살던 시절에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평범한 사고로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니 이 고전 로맨스가 인쇄된 종이 너머로 후광이 비치는 듯 했다.
(나중에 옮길 텍스트::::이 책은 그저 예전에 쓰인 로맨스 소설이 아닌, 현대 로맨틱 코메디 장르 자체의 효시다. 아직까지도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투쟁하고 있는 ‘여성성’이라는 굴레와 ‘여성의 사회적 제한’이라는 주제를 담아내기까지 한 작품.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에 의해 쓰인 작품. )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나도 곡 쓰겠다며 혹자들이 비웃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인간의 음악적 본능을 무시했다며 비판 받는 쇤베르크, 변기통만 갖다 놓으면 작품이냐고 비난 받는 뒤샹.
물론 그들의 작품은 괴랄하며, 통상적인 예술 작품 감상의 관념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통상적이라는 것이 뭔데? 음악이 뭔데? 미술이 뭔데? 전시가 뭔데? 그들은 예술에 대한 패러다임에 반격을 가한 위대한 철학자이자 혁명가다.
경우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예술 형태는 지속적인 형식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이어지더라도 비주류에 머문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파격적인 패러다임은 여러 예술가들의 마음에 남아, 새로운 패러다임의 불을 지피우고 있다.
‘고전’은 단순히 예전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그 시절의 빛나는 생각과 예술적 영감, 무한한 상상력이 응축된 작품... 그런 바래지 않는 가치가 있기에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 전해지는 작품을 말한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그 고전 작품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되새길 때, 작가의 현안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따라서, 둘째, 빛나는 가치를 지닌, 이 고전들을 보며,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 한 가운데 던져졌다.
1)역사를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되새겨 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2)현대인들이 놓인 패러다임은 무엇이며, 어떠한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미래에 어떻게 변화 될 것인가
3)나는 어떤 패러다임을 변화 시킬 수 있을까.
역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많은 책들이 이러한 측면에서 쓰여졌다. 이 책이,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나에게 남긴 긴 여운 때문에, 앞으로 내가 이어갈 독서 기록 또한 주로 ‘패러다임’의 변화에 입각하여 작성 될 것 같다.
'Reeeeeeview > Boooooo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계발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2) / 임태섭 (0) | 2021.02.24 |
---|---|
[자기계발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1) / 임태섭 (0) | 2021.02.24 |
[에세이] <고전탐닉> / 허연 (0) | 2021.01.21 |
[설화]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환혼석’<한국의 판타지 사전> / 도현신 (0) | 2020.12.27 |
[전기]스티브 잡스 Steve Jobs (0) | 2020.12.13 |
댓글